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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Health Aff > Volume 1(1); 2017 > Article
한국의 공공보건의료와 공공성 개념

Abstract

Although the emphases on ‘publicness’ and health care provided by public sector has been evolved in South Korea, theoretical basis of publicness of health and health care is still fragile. As policies and practices of health care based on the value of publicness are under active debates, philosophical and theoretical foundations are need to be more systematic and relevant.
As the criteria of ownership is not sufficient condition to fulfil the value of publicness, it is not clear ownership is essential requirement to achieve publicness. The single criteria of ownership, focusing individual provider or institution in particular, is not applicable in explaining the reality as well as theoretical aspects on whether publicness is achieved or not. Performing publicness of health care is related to multiple factors at various layers and dimensions, but current framework of publicness is only concentrating on individual elements without open-system thinking.
This paper discuss how we could extend the concept of publicness and ‘public health care’ to include public system, public eco-system, public regime, and health regime, as tentative but promising theoretical frameworks, more relevant to explain reality and challenge in achieving publicness in health and health care. Regional health regime is also discussed, considering geopolitics, decentralization, and ‘production regime’ of health care.

1. 서론: 공공보건의료와 공공성

한국에서 ‘공공보건의료’는 흔히 소유 주체가 공공이라는 것을 뜻한다. 공공기관, 공공조직, 공공부문 등에 포함된 공공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공공 소유란 법률적, 행정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정부 또는 준정부 기관이 소유한 것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공공성’은 보건이나 의료가 지니는 특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유보다는 범위가 더 넓다. 그런 만큼 추상적이고 내포와 외연이 모호한 것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보건의료 자체가 공공성을 갖는다고 하면서 소유가 민간이든 공공이든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때 공공성은 ‘좋은’ 또는 ‘양질’의 보건의료가 갖는 특성, 즉 보건의료가 마땅히 가져야 할 바람직한 속성과 큰 차이가 없다.
공공의 개념이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공공 또는 공공성 개념이 맥락에 따라 달라지고 또한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공의료와 공공미술이 뜻하는 공공의 개념이 완전히 다른 것이 대표적 예다. 공공미술에서 공공은 소유를 뜻하기보다는 모든 시민이 접근할 수 있다는 개방성과 보편성의 의미가 더 강하다. 따라서 보건의료 또한 공공보건의료 또는 공공성이 논의되는 맥락을 살피는 것이 개념을 선험적, 규범적으로 정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또한 현실적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공공보건의료 또는 공공성 개념이 성립된(현재도 진행되는) 맥락은 이를 요구하는 대립적 상황, 즉 보건의료의 상품화, 영리화, 시장화, 자본주의화 등이 확대, 심화하는 상황과 분리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는 최근 들어서야 공공보건의료라는 말과 개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을 한 가지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1].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행정부가 제시한 보건의료정책이나 체계, 제도에 ‘공공의료’라는 용어나 비슷한 개념을 찾기 힘들다. 이들 정책 내용에는 경영의 공익성, 행정력, 공급체계 등 공공과 관련된 기술적이고 부분적인 서술만 나타난다. 공공이란 지금과 같이 체제적·체계적 특성을 규정하는 포괄적 의미라기보다는 정책 기술적 의미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공공과 민간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공급하는 서로 다른 주체로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타당성과 현실성을 두고 경쟁하는 정책 선택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국에서 공공보건의료가 민간 의료 또는 사적(私的) 의료와 이념적, 철학적으로 대립하게 된 것은 세계적 범위에서 ‘민간’이 새로운 의미를 얻은 이후이다. 이 과정은 또한 민간이 보건의료를 주도하는 권력 관계의 재편과 함께 진행된다. 여기서 민간은 주로 시장과 그 특성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공공보건의료는 민간 영역의 확대, 심화와 동반되어 정립된 역사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공공은 민간,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시장의 반대 또는 대항 개념으로 자리 잡고, 동시에 시장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다른 주체인 국가와 친화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공공과 국가가 사실상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에는 적어도 두 가지 사정이 작용했다. 하나는 한국 보건의료에서 민간의 성장이 국공립 의료기관의 위축과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민간의료는 공공의료의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함께 나타나는 문제점(비용, 상업화, 불평등, 영리화 등)은 자연스럽게 국가나 공공의 ‘결핍’으로 이해되었다. 이와 함께, 공공과 국가가 동일시된 또 다른 사정은 따로 공공이라 할 만한 사회적 실체, 즉 시민사회나 제3 섹터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서구와 같은 의미에서의 공공 영역이나 공적 공간이 채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에 국가와 분리된 공공 개념의 성립을 기대할 수는 없다. 보건의료에 국한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민간과 시장에 대항하는 주체는 현실적으로 국가를 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결국 한국에서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시장의 확대, 심화와 더불어 국가의 역할과 결합되어 생성된 역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축적되고 변화하며 구체적 맥락에 긴밀하게 연관된 특성을 빼고는 내용과 형식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현재도 공공보건의료 또는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약해졌지만 공공보건의료 강화가 거의 전적으로 공립 의료기관의 증설 문제로 귀결된 것이 이를 말해 준다2).
이제 공공보건의료와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새로운 맥락에서 (재)규정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과거와 같은 방식, 즉 국가와 시장만으로는 건강과 보건의료를 둘러싼 사회적 권력의 상호관계를 모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한 국가 권력-경제 권력-사회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코헨과 아라토[2]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다). 보건의료에서 국가와 시장 이외에 권력의 다른 주체, 예를 들어 시민사회나 사회 권력이 크게 성장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지만, 과거의 틀에 담을 수 없는 다양한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공공보건의료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국가에 의한 공공성의 ‘독점’이 깨지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보건의료에서 국가와 공공이 분리되는 과정은 적어도 두 가지 변화와 동반된 것이면서 또한 그 결과이다. 하나는, 물질적 토대를 갖든 그렇지 못하든, 시민사회나 사회 권력의 실체를 부인하기 어렵다는 사정이 작용한다. 노동운동과 사회 운동은 물론이고 다양한 비정부기구와 시민단체들의 등장과 활동이 한 가지 예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와 권위, 사회적 메커니즘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실재이자 변화의 기제(메커니즘)로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3의 ‘권력’은 이유야 무엇이든 공공성을 지향하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국가의 성격이 변화했거나 적어도 그 성격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1990년대 말 이후 국가의 성격 변화가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국가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주체이자 주된 동력이 되면서 공공성을 구현하는 유일한 주체의 지위는 현저하게 약해졌다. 나아가 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즉 시장에 ‘포획된’) 국가의 역할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진주의료원 폐원의 예나 영리병원의 허용 등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는 ‘전략적 관계’에 따라 공공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시장에 포섭되기도 한다[3].
공공보건의료와 공공성에 대한 이상의 설명은 사회적 현상과 변화를 서로 다른 권력의 주체가 맺는 상호관계로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국가와 시장의 두 가지 주체 외에 시민사회 또는 사회 권력을 중요한 주체로 포함하는 것이다. 좀 더 추상적으로는 코핸과 아라토[2] 또는 라이트[4]의 ‘국가-경제-사회 권력’의 삼분법이나 일본의 야마와키 나오시(山脇直司) 등이 말하는 ‘공-공공-사’의 삼원론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5]3). 강조할 것은 앞의 이론들에서는 각각의 주체를 정태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특히 라이트의 논의). 즉,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가=공공 또는 시민 사회=공공이라는 기계적 관계를 거부한다. 세 권력 주체 사이에는 상호 작용과 침투가 일어나고, 공공성 또한 그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공공성을 독점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결국 공공성은 서로 다른 주체 사이에서 나타나는 권력의 균형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물로 바뀐다. 공공과 소유 주체의 구분은 전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며, 공공성은 국가, 경제, 사회 권력 모두에 부분적으로 걸쳐 있다. 공적 주체의 역할로 보면 국가의 비중이 제일 크지만, 사회 권력과 경제 또한 여기서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따라서 공공과 공공성을 이론적, 실천적으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공공, 경제와 공공, 사회 권력과 공공의 세 가지 상호관계를 해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또한 공공을 매개로 한 국가, 경제, 사회 권력 사이의 상호 관련성도 중요하다.
국가, 경제, 사회 권력으로 영역을 나누었지만, 공공 또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이들의 조건은 크게 다르다. 국가는 어떤 조건에서 공공성을 실현하지 못하는가가 중요한 관심사라면, 반대로 경제는 어떤 조건에서 비로소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더 주목해야 한다. 특히 경제가 공공성 실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가능하다면 어떤 조건에서 그럴 수 있는지가 중요한 논의 대상이다(예를 들어 사회적 기업). 물론 여기서는 공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먼저다. 한편, 사회 권력은 공공과 공공성 관점에서 다양한 질문을 제기한다. 사회 권력과 공공이 등치 관계에 있다는 주장부터, 아주 한정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범위가 넓다. 이 또한 사회 권력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2. 공공성을 위한 조건 - 민주적 공공성

국가-경제-사회 권력이라는 삼분법을 기본 전제로 할 때, 공공성의 실현 여부는 이들의 상호관계에 의존한다. 상호관계란 중립적, 정태적 상태로서의 상호 ‘관계’가 아니라 양방향 또는 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침투’ 과정과 그 잠정적 결과를 뜻한다. 경제 권력의 크기가 사회 권력을 압도하면 공공성이 실현될 공간은 그만큼 좁아지고 사회 권력이 강해지면 국가 권력과 경제 권력이 공공성을 추구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런 점에서 국가-경제-사회 권력이 공공성을 둘러싸고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공공성과의 관련성 속에서 사회 권력의 성격은 논쟁적이지만, 사회 권력이 그 존재만으로 공공성 실현을 저절로 담보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회 권력은 본질에서 공공성을 기반으로 성립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raison d'etre)로 삼지만, 현실은 다르다. 끊임없이 국가와 경제로부터의 침투를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국가와 경제에 침투할 만한 공공성의 동력과 역량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 권력이 자신을 갱신하거나 더 새로운 사회 권력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사회가 전면적으로 경제 권력에 포섭되고 ‘식민지화’하면서 사회 권력의 공공성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상호관계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본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한 가지운동의 다른 측면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1) 사회 권력과 국가

사회 권력을 강화하여 국가에 개입하는 것은 대체로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과제와 부합한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국가 권력의 반(反)-공공성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핵심 수단이자 가치로 작동한다. 관료주의와 전문가주의, 비효율, 비민주성 등은 물론 경제에 포섭된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실패 역시 민주적 통제의 대상이다.
민주주의의 형태를 대의 민주주의, 결사체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로 나눈다고 할 때, 민주주의 심화 정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개입이 가능하다. 라이트가 제시한 민주적 통치 방식 중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권력이 강화된 참여적 통치(empowered participatory governance, EPG)”라고 부른 것으로, 심화한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4].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의 참여형 예산제이고[6], 보건의료에서는 브라질의 건강평의회(Health Council)에서 비슷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7].
EPG는 맥락에 따라 제한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브라질 사례에서는 사회 권력이 어떤 형태로든 국가 권력(지방 권력을 포함한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EPG가 작동하려면 주로 사회 권력이 국가 권력에 참여해야 하고, 이는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국가 권력 자체의 민주적 변화를 거쳐야 가능하다. 지방 권력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EPG가 좋은 예이긴 하나 모든 경우에 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경제 권력이나 사회 권력이 국가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국가에 개입하는 것의 의의는 달라지지 않는다. 개입의 목표 또한 크게 다르지 않지만, EPG가 말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달리 생각하면 사회 권력이 국가에 개입하는 것은 완성된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권력 모두 변형을 경험하면서 계속되는 하나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침투의 수준이 다를 뿐 국가 역시 사회 권력의 압력을 받으며, 이에 반응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변형(transformation)해 나갈 수밖에 없다.
앞서 설명한 것과는 반대 방향, 즉 국가가 사회 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가능하고 당연하다. 물론, 영향이나 침투의 수준은 국가를 구성하는 ‘전략적 관계’ 속에 공공성이 얼마나 높고 강하게 관철되는가에 달려있다. 공공성의 측면에서 국가가 개입하는 배경에는 사회 권력의 취약한 공공성 문제가 있다. 사회 권력은 공공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성립하기 어렵지만, 현실에서 사회 권력은 국가와 경제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특히 경제(자본)의 영향이 커질수록 사회 권력의 공공성은 동요하기 쉽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세계경제의 강력한 영향을 받으면서 상당 부분 변형되고, 그 결과 공공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8, 9].
국가와 사회 권력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특히 공공성 문제에서는 더 그렇다. 국가가 정치공동체의 공익 보호를 자임하는 한 공공성을 완전히 폐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가는 때로 경제와 긴장 관계를 가지면서 사회 권력의 공공성을 강제하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사회 권력은 한편으로 국가와 경쟁하지만, 삼자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국가와 경제는 물론 사회 권력 내부로부터의 압력이라는 (서로 방향을 달리하는) 삼중고(trilemma)에 봉착할 수도 있다.

2) 사회 권력과 경제

사회 권력이 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국가에 개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라이트는 사회 권력이 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적 경제, 기초소득, 사회적 자본주의, 협동조합적 시장경제, 비시장적 참여민주주의 경제(파레콘, parecon) 등 다양한 방식을 거론했다[10]4). 이와 같은 제안에 대해서는 좌우 모두로부터 다양한 가능성과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여기서 구체적 전략을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이런 구체적 설계와 경험이 상상력을 넓히는 데 참고와 자극이 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건강과 보건의료에서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되 수정된 구상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과제와 더불어 건강과 보건의료가 가지는 특수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특수 과제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전문직업주의(professionalism)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로 집약된다. 역사적으로 어떤 정치, 경제체제에서도 보건의료에서 나타나는 전문직업주의를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만큼 다양한 모색과 많은 고민이 필요한 과제다.
구체적인 전략과 대안의 종류와는 무관하게, 사회 권력이 경제에 개입할 때 핵심과제이자 목표는 ‘생산체제’를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여러 개입방식도 근본적으로는 생산체제의 민주화와 연관되어 있다. 건강과 보건의료의 시각에서는 일반적인 대인적 생산체제 중 가장 익숙한 것이 협동조합적 생산방식이다(넓은 범위에서 의료생협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안을 고민할 때는 여기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경제와 사회 권력의 관계에서는 민주주의의 구현과 함께 공공성의 실현도 도전적인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주류 경제의 압도적인 권력을 고려하면 사회 권력이 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흔히 국소적이고 부분적인 수준을 면치 못한다(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의 예). 경제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공공성을 추구하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3. 공공보건의료의 확장 - 공공 시스템, 공공 생태계, 공공레짐

1) 공공 시스템

공공성을 국가-경제-사회 권력의 상호관계로 이해하는 것과 함께 실천적 측면에서 공공성 논의를 확장할 수 있는 접근이 공공보건의료를 하나의 하부 시스템(sub-system)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공공보건의료는 다른 영역 또는 다른 하부 시스템과 분리된 폐쇄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는 물론 보건의료의 다른 하부 시스템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작용하는 개방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지방의료원에 근무하는 인력은 모든 보건의료 인력 시스템에 속해 있을 뿐 아니라 교육, 노동시장, 고용 등의 시스템에 속해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공공 시스템 접근은 공공성이 실현되기 위한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조건을 고려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시스템 이론을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지만, 시스템의 특성을 보면 시스템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공적 주체가 공적 지배를 통해 공공성을 실현하는 구조와 과정을 하나의 체계(시스템)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동태적 복잡성(dynamic complexity)을 가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시스템이 갖는 특성은 특히 경제 권력이 우위에 있는 한국 공공보건의료에서 공공성을 실현하려는 모든 행동이 맞닥뜨릴 수 있는 조건이다. 공적 주체와 공적 지배 등을 요소로 포함하는 ‘공공 시스템’ 또는 ‘공공의료 시스템’을 규정하면 시스템의 일반적 특성이 모두 나타나게 된다. 시스템의 일반적 특성 중 하나인 ‘자기 조직화’를 예로 들면, 공공보건의료는 그 안에 있는 인력이나 시설, 재정, 거버넌스 등 어느 한 가지 요소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많은 여러 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에 따라 전체 시스템의 특성이 결정될 뿐 아니라, 다른 시스템 예를 들어 민간의료 시스템과의 상호 작용 또한 영향을 미친다. 공공의료 시스템의 한 요소인 의사 인력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공공의료 시스템의 다른 요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민간의료 시스템의 각 요소와도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 공공 병원에서 좋은 의사를 채용하려면 민간 부문의 인건비 수준이 문제가 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공공성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시스템적 접근이나 사고는 공적 주체와 공적 지배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공공 시스템의 각 요소가 서로 연계되고 의존한다는 것 그리고 공공 시스템에 가까운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이 또한 공공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공공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을 확장하면 공공 시스템을 하나의 하위(sub) 시스템으로 보고 이를 상위 시스템과의 관련성 속에서 위치 지울 수도 있다. 이 때 그 상위 시스템을 한국의 사회경제체계라 한다면, 하부 시스템으로서의 공공 시스템은 이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2) 공공 생태계

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이 생태계 개념이다. 정확하게는 ‘생태 시스템(ecological system)’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생태 시스템 이론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브론펜브레너(Urie Bronfenbrenner)가 인간 발달을 설명하면서 개발한 것으로, 그는 여러 층위의 환경 시스템이 개인과 작용하면서 인간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11]. 시스템은 층위에 따라 미시 시스템(microsystem), 중간 시스템(mesosystem), 외부 시스템(exosystem), 거시 시스템(macrosystem)으로 나누어지고, 나중에 시간 시스템(chronosystem)이 추가되었다[12]. 앞서 말한 시스템과 같은 용어를 쓰지만, 여기서는 층위에 따라 시스템을 구분하고 행위 주체를 중심으로 환경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생태계’ 또는 생태계 이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브론펜브레너가 왜 여러 층위의 시스템이 있고 그것이 인간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는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의 관심인 공공 생태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인간 발달에서 미시 시스템은 당연히 가정이나 이웃, 학교와 그 특성을 말한다. 이와 달리 공공 생태계는 개인 이외에도 조직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국가나 자본 등의 공적 주체를 총체적으로 다룰 수도 있으므로 층위와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느 경우든 공적 주체를 중심으로 여러 층위의 시스템이 외부 환경을 구성하고 공적 주체와 이들 시스템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각 층위의 시스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이를 공공 생태계에 적용하면, 브론페브레너가 정의하는 중간 시스템은 주체를 포함하는 둘 이상의 환경 사이를 연결하는 관계나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리킨다. 즉, 이는 미시 시스템들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지방의료원을 하나의 공적 주체로 보면 이들을 중심으로 다른 행위자, 예를 들어 감독관청(해당 시도), 협력해야 하는 민간기관(민간 병원), 해당 지역 사회(어떤 시나 군) 등의 환경이 미시 시스템을 구성한다. 이때 이들 사이의 관계나 상호작용을 중간 시스템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도와 민간 병원 사이의 관계가 이에 속한다.
외부 시스템은 중간 시스템과 다른 것은 같지만 둘 이상의 환경 가운데에 적어도 하나는 우리가 관심을 두는 행위 주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그러나 행위 주체를 둘러싼 미시 시스템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과의 관계나 일을 가리킨다. 앞의 예와 마찬가지로 지방의료원에 적용하면, 감독관청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의 미시 시스템에 속하는 정부부처(보건복지부)와 민간기관(민간 병원)의 관계나 그 상호작용이 외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에서 거시 시스템은 미시, 중간, 외부 시스템을 포함하는 문화적 환경을 가리킨다. 특히 신념 체계, 지식, 물적자원, 관습, 생활양식 등이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이런 요소들은 인간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거시 환경일 수 있으나, 공공 생태계에 적용하면 거시 시스템이 ‘문화’에 그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원래 브론페브레너 이론의 관심이었던 인간 발달로 보더라도 문화에만 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시, 중간, 외부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이 거시 시스템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와 정치체제, 경제와 그 체제, 사회 규범과 이데올로기, 서로 다른 사회 권력 사이의 균형 등을 빼놓을 수 없다.
시간 시스템은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변화와 사회 역사적인 환경을 포함하는 3차원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에 비하여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신공공관리론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공공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시기적 변화와 새로운 환경은 같은 공적 주체라 하더라도 다른 환경으로 작용한다.
공공 생태계 개념은 공적 주체와 공적 지배, 그리고 공공성의 실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환경(특히 위계적, 다차원적 환경)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런 점에서 본래 이론의 구성요소인 여러 시스템의 구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다양한 환경이 위계적 구조로 되어 있고, 그들 사이에 상호관련성이 있으며, 이런 환경과 상호관련성이 공적 주체와 공적 지배, 공공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3) 공공 레짐

프랑스 혁명 이전의 옛 제도 또는 체제를 뜻하는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레짐’ 개념은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고 폭넓게 쓰인다. 학술 영역에 한정하더라도 각 영역별로 다양한 경로로 발전되어 왔다.
레짐 이론을 가장 활발하게 논의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도시학으로, 레짐은 흔히 정부 이외의 비공식적인 제도나 체계를 가리킨다. 레짐 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연구자에 속하는 스톤(Clarence N. Stone)은 레짐을 “정부의 공식 활동 주변에서 이를 보완하는 비공식적 제도(the informal arrangements that surround and complement the formal workings of governmental authority)”라고 정의했다[13]. 레짐을 이렇게 정의한 바탕에는 사회경제체계의 핵심 특성은 국가와 시장의 분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식이 있었다[14]. 예를 들어 도시에서 생산재는 기본적으로 사적 영역에 속해 있고, 정부의 작동은 민주적 통제에 따라 달라진다.
‘국제 레짐’이나 ‘젠더 레짐’ 개념은 원칙, 규칙, 규범 등을 설명하는 틀로서의 의미가 좀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크라스너(Stephen D. Krasner)의 정의가 국제 레짐의 초기 정의로 자주 인용되는데, 그는 국제 레짐을 “국제 관계의 특정 영역에서 행위자의 기대가 수렴되는 일련의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원칙, 규범, 규칙, 정책결정 절차의 총체(implicit or explicit principles, norms, rules, and decision-making procedures around which actors' expectations converge in a given area of international relations)”라고 정의했다[15]. 또한 스웨덴의 여성학자 샌즈베리(Diane Sainsbury)는 젠더 레짐을 “일정한 기대를 만드는 규칙과 규범의 복합체(a complex of rules and norms that create established expectations)”로 정의하고, 젠더 레짐은 “양성간의 관계에 대한 규칙과 규범으로 각각에 과업과 권리를 배분한다(consists of the rules and norms about gender relations, allocating tasks and rights to the two sexes)”고 주장했다[16]. 맥리(Heather MacRae)가 정의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젠더 레짐은 “어떤 정치체에서 젠더 관계를 나타내며 또한 그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규범, 가치, 정책, 원칙, 법률(a set of norms, values, policies, principles, and laws that inform and influence gender relations in a given polity)”을 의미한다[17].
좁은 범위에서 구체적 제도를 나타내기 위해 레짐 개념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에스핑 앤 더슨(Gøsta Esping-Andersen)은 “생산된 복지가 국가, 시장 그리고 가구 사이에 할당되는 형태(the ways in which welfare production is allocated between state, market, and households)”를 복지국가 레짐으로 규정했다[18]. 일부 연구자는 빈곤레짐을 제안했는데, 세인즈베리는 이를 “전체 사회보장 체제에서 자산조사형 급여가 차지하는 위치, 수급자격 기준과 수급률, 행정, 활용률(utilisation rates), 급여 수준, 빈곤 감소 효과, 빈곤 이데올로기 등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정의했다[19]. 이들 레짐 개념은 앞서 말한 도시나 국제에 비하면 구체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서로 다른 나라나 체제를 비교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이와 같은 레짐 개념에 기초하면 레짐 개념은 적어도 세 가지 관점에서 제안되고 논의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공적 활동이나 정책을 설명하는 데에 정부와 공공영역뿐 아니라 비정부 또는 비공식 부문을 함께 포함하기 위한 개념으로 쓰인다. 도시 레짐이 그렇고 복지국가 레짐도 부분적으로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두 번째는 사회적 현상이나 활동을 이해하는 데에 가시적인 제도와 정책 이외에 가치와 규범, 원칙 등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젠더나 국제 레짐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은 레짐을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정책이나 제도의 총체 또는 통합물로 이해하는 것이다. 앞의 예 중에서는 빈곤 레짐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고, 복지국가 레짐도 일부 이런 측면이 있다.
레짐 개념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앞서 검토한 ‘공공 시스템’과 ‘공공 생태계’와 다르지 않다. 즉, 공적 주체와 공적 지배, 그리고 공공성 실현을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포괄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을 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레짐 역시 본격적인 논의와 이론 구성은 다른 과제로 미루어야 하겠지만, 레짐 이론들이 공유하는 몇 가지 특징은 ‘공공 레짐’의가능성을 더 탐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앞에서 정리한 서로 다른 시각의 레짐 이해에 기초한다.
첫째, 공공 부문뿐 아니라 시장을 비롯한 비공식 부문이 하나의 체계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도시 레짐에서는 주로 시장에 관심이 있지만, 공공성의 경우에는 시민사회도 공적 주체에 포함해야 하고, 이런 점에서 공공 레짐 개념에서는 공공 시스템이나 공공 생태계 개념에는 없는 장점이 나타난다.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서로 다른 주체 사이의 ‘분업’을 좀 더 잘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음으로, 공공 레짐 개념은 가시적인 제도나 정책, 구조뿐 아니라 원칙이나 규범, 규칙, 법률, 가치, 문화 등의 역할을 폭넓게 고려하는 것을 허용한다. 시스템이나 생태계 개념도 일부 이런 요소를 포함하지만, 레짐 개념은 오히려 이들 요소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국제 레짐을 검토한 퍼칼라(Donald J. Puchala)와 합킨스(Raymond F. Hopkins)는 그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는데[20], 이런 특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 - (국제) 레짐 자체는 주관적이다. 합법적이고 적절하며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참여자의 이해, 기대, 확신의형태로 존재한다.

  • - 의사 결정을 위한 적절한 과정을 규정한다.

  • - 중요 원칙과 규범을 포함한다.

  • - 핵심 행위자로 기능하는 엘리트 집단을 포함한다.

  • - 인식할 수 있는 유형화된 행동이 있는 영역이라면 모든 실질적인 내용을 가진 이슈에 존재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접근은 레짐 개념을 지나치게 넓게 설정한다는 비판이 부를 수 있다. 이에 비해 좁은 범위에서는 레짐 개념을 여러 정책이나 제도의 총합으로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공공 레짐이라는 시각에서 교통의 공공성은 소유 주체, 가격, 수혜자, 빈곤 감소 효과, 이데올로기 등 여러 요소를 포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합하면 공공 레짐은 세 가지 다른 시각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즉 공적 주체에 비국가(비정부), 비공식 부문까지 고려하고, 제도나 정책, 구조뿐 아니라 원칙이나 규범, 규칙, 법률, 가치, 문화까지 포함하며, 유형의 제도와 정책의 총합이기도 하다. 이런 개념 규정은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지만, 공적 주체와 공적 지배만으로 공공성 실현을 설명하는 것에 비해 분명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포괄적인 개념 규정이 드러내는 공공 레짐 개념의 모호함과 추상성은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다.이런 단점은 앞서 살펴본 시스템과 생태계와 비교해 더 두드러진다. 레짐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요소들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각 요소는 어떻게 규정하고 측정할 것인지, 그리고 그런 개별 요소들이 전체 레짐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인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4. 민주적 공공성을 기초로 한 ‘지역건강레짐’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를 결정하는 또 다른 축은 지리적(geographical) 차원이다. 공공성의 측면에서 사회 권력이 국가와 경제에 개입하는 층위는 중층적인 것으로, 국가 수준은 물론, 지방과 지역, 소규모 공동체, 기관 등 다양한 층위에서 개입이 일어난다. 보건의료와 직접 관련된 대상 영역(정치, 정책, 경제, 사회문화 등)이 다양한 것까지 고려하면, 특히 다면, 다층적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으로서 지역이 중요하다.
지역 차원에서 공공성을 결정하는 데도 국가-경제-사회 권력의 상호관계가 중요하지만, 공공 레짐과 함께 ‘건강 레짐(health regime)’ 개념에 기초한 접근을 제안한다. 건강 레짐은 앞서 설명한 공공 레짐과 비슷한 논리 구조를 가진 것으로, 잠정적으로 “건강과 보건의료와 연관된 가치, 규범, 규칙, 정책, 법률, 제도의 총합으로, 행태와 상호관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틀”이라 규정할 수 있다. 공공성을 말하면서 건강 레짐을 다시 제안하는 것은 공공성의 내용과 범위를 설명하는 데에 다른 틀(프레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건강과 보건의료는 그 기초가 되는 비전과 이념을 빼고 온전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결과나 산출로서의 공공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그 기초로서의 비전과 이념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건강은 보건의료의 좁은 틀이 아니라 건강을 결정하는 전체 결정요인의 틀에서 봐야 하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결정요인이 포함된다. 노동이나 소득, 교육, 환경, 젠더, 문화 등이 모두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를 포함한) 제도나 정책, 기관이나 조직만 가지고 건강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포괄할 수 없다. 아울러 건강과 보건의료의 구성 요소를 규율하는 원리에도 공공성 개념이 적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 권력에 의한 통제, 개방성, 사회연대 같은 것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원리들은 앞에서 말한 비전이나 이념과 떨어질 수 없다. 전통적인 개념을 빌리면 ‘과정’의 성격을 빼고 공공성 개념을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목적 지향적인 변화(정책을 포함하여)의 내용과 과정, 그리고 전략이 모두 공공성과 무관할 수 없다.
결국 공공성은 이상과 같은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그리고 이와 관련된 과정의 특성이자 또한 결과이다. 공공성은 구조(예를 들어 소유)에만 한정되지 않고, 결과나 정책 내용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며, 행위 주체와 과정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과 지역 사회, 공공보건의료 기관, 공공 시스템, 공공 생태계 모두와 관련된 것으로, 결국 이런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공공성의 대상은 어떤 ‘체계’나 ‘정책’, ‘제도’로 부르기 어렵다. ‘레짐’은 이들 모두를 포괄하고 그 이상을 뜻한다. 이렇게 될 때 공공성은 곧 건강 레짐의 공공성을 의미하게 된다.
공공성에 ‘민주적’이 더해진 것은 다분히 역사적인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즉, 한국에서 공공성은 여전히 국가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국가-경제-사회 권력의 틀에 기초하면 이런 동일시는 공공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 가운데에 핵심적인 것이 민주주의와 참여라는 요소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민주적’이라는 설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동어반복일 수 있지만 나타내고자 하는 공공성의 본질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건강레짐’을 단순하게 말하면 건강 레짐의 개념을 지역에 적용한 것이지만, 국가 수준의 개념이 기계적으로 적용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지역에서는 보편적인 과제와 더불어 국가 수준과는 다른 고유한 과제도 같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가의 정책과 지역의 정책은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실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앞서 말한 국가-경제-사회 권력의 상호관계라는 틀로 보면 지역을 구분할 필요는 더욱 명확해진다. 건강 레짐의 규정을 되풀이하면, 공공성에 기초한 지역건강레짐이란 건강과 보건의료와 연관된 가치, 규범, 규칙, 정책, 법률, 제도가 총체적으로 공공성에 기초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행태와 상호관계의 방향 역시 공공성을 가지게 된다.
민주적 공공성에 기초한 지역건강레짐은 많은 이론적, 실천적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로서는 공공성의 새로운 이해와 확장을 위한 실마리를 만드는 정도의 역할을 기대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역건강레짐은 단지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연결되는 다양한 실마리를 포함한다. 다음 몇 가지는 지역의 건강 레짐을 구상하는 데에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지역에서는 건강한 지역건강레짐의 기초가 되는 사회 권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과제가 두드러진다. 이는 지역이 갖는 특성이자 지역에 주어진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 개념이든 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에 가깝든, 지역은 사회 권력이 만들어지는 가장 유력한 현장이다. 따라서 지역사회는 대안적 건강 레짐의 출발이자 기본요소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지역에서는 대안적 생산체제가 작동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보건의료의 대안적 생산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적 생산방식에 기초한 종합병원이나 장기요양서비스의 공급은 지역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보건소나 공공병원, 민간병원은 왜 불가능한가? 생산체제에 대한 고민을 확장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적 공공성이라는 원리가 적용되고 실천되는 곳도 일차적으로는 지역이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소유와 의사 결정, 실천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이는 작은 집단의 자기 이해관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공적·공공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는 광범위한 불평등과 배제, 경제적 이해관계가 실재하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민주적 공공성이라는 과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현실적인 조건 안에서 공공성을 심화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5, 결론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는 가치와 지향으로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나 이론적인 기반은 취약하다. 실천과 정책이 가치 지향에 미치지 못한다고 전제하면, 그 한 가지 이유는 이론과 지식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개념이 모호하고 내용, 내포와 외연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실천 또는 정책과도 관련된 중요한 해결 과제다.
소유 주체가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를 충족하는 충분조건이 아닌 것은 명확하나, 필요조건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소유 주체를 중심으로 공공보건의료를 특정 영역이나 제공자(예를 들어 “지방의료원”의 공공성)에 한정하는 접근도 현실은 물론 공공성의 조건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공공보건의료의 실천은 체계 또는 시스템 속에 있는 데 비해, 분석과 논의, 개입 대상은 개별 제공자나 기관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 발전을 위해서는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 개념을 확장하고 재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확장된 공공보건의료로서 공공보건의료 체계, 공공 시스템, 공공 생태계, 공공 레짐, 건강 레짐 등의 개념을 제안하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리적 차원을 포함하는 지역건강레짐 개념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시론적 논의는 앞으로 다양한 이론적, 실천적 경험을 통해 검증되고 수정, 보완될 수 있다. 첫 단계로는 개념과 구성 요소를 구분하고 명료하게 하여 과정이나 결과와 연결하는 경험적 분석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Notes

1) 이 논문의 일부는 다음 글을 고쳐 보완한 것임. 김창엽. 한국 보건의료의 공공성과 대안. 임종한 외. 참 좋은 의료공동체를 소개합니다. 고양: 스토리플래너. 2014.

2) 다른 영역이라고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철도나 금융의 공공성 논의도 비슷하다.

3) 삼분법 또는 삼원론의 분류에서는 권력을 나누는 다양한 제안이 있지만, 여기서는 국가 권력-경제 권력-사회 권력으로 용어를 통일한다.

4) 파레콘(parecon)은 ‘PARticipatory ECONomics’에서 따온 것으로, 앨버트(Michael Albert)가 제시한 민주주의적 경제체제 구상이다. 현실성을 두고 비판이 많지만 구상의 상상력과 정교함은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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